[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전체]
사랑
성령
기도
하나님
믿음
마음
감사
구원
은혜
검색어 : [최신 구약 개론] 나훔()
 
본문

"위로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의 선지자 나훔은 주전 7세기에 앗시리아를 향해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역사적인 정황이 너무나 뚜렷한 나머지 전체 기독교 역사에서는 오히려 주목받지 못한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심미적인 가치와 역사적 신학적 맥락 속에서의 중요성을 간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역사적 배경 저작권 표제는 저자의 이름을 나훔이라고 한다. 그는 엘고스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바가 없다. 사실 엘고스라는 곳도 정확히 알수가 없는 현실인데, 몇가지 제안들이 있었다. 중세의 전통은 나훔을 포로로 잡혀간 북왕국의 후손이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엘 카우제라는 갈릴리의 한 장소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북왕국의 한 장소인 가버나움도 강력하게 주장된다. 가버나움이라는 도시의 어원은 ""나훔의 도시""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고스에 대한 논의들은 본문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며, 논의 자체도 중요한 것이 못된다. 시대 나훔서는 철저하게 역사적인 상황에 뿌리를 박고 있다. 주전 7세기로 확정할 수 있는데, 그 연대는 주전 664년 이집트의 테베의 멸망(3:8)과 선지서의 중심 사건은 612년 니느웨의 멸망 사이의 어느 시점일 것이다. 아마도 나훔서는 앗시리아 제국이 상당히 약화되기 이전에 이 책이 쓰여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훔1:12절은 앗시리아가 강장하고 중다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서 가장 가능성 있는 연대는 주전 652년의 앗시리아 내전에서부터 626년 바벨론이 앗시리아의 지배력을 크게 흔들기 시작한 시점 사이의 어느 때일 것이다. 이 선지서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초점은 역시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앗시리아는 8세기에서 7세기 초엽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652년경에 에살핫돈의 두 아들이 바벨로니아와 니느웨에서 내전을 일으켰을 때부터 아마도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앗술바니팔 왕은 내전을 종식시키고, 또한 이집트까지 정복하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의 사망과 함께 앗시리아는 급작스런 멸망으로 치닷게 된다. 앗시리아의 멸망에는 바벨론과 메데의 합동 작전이 주요했는데, 메데의 노력으로 니느웨가 무너졌으나, 실상은 바벨론이 그 성을 차지하고 말았다. 문학적인 분석 문체 나훔서는 매우 거친 심판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표현은 매우 시적이다. 비유적인 표현이나 짜임새있는 평행법들은 나훔 자신이 탁월한 시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장르 원래 선지서는 세가지 용어로 표제를 시작한다. 책, 이상, 신탁이라는 말이 그것인데, 나훔서에는 책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설교자였으며, 그들의 선지서들은 그들이 말한 바들을 나중에 모든 것들이다. 그러나 나훔은 책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책의 여러 가지 기교들은 오히려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호소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한편으로 나훔서는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특별히 2:3-10; 3:2-3에서 그러한 성격이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나훔서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는 신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 이 책은 매우 짜임새있게 구성되어 있다. 선지자의 이름, 도시의 이름, 그의 주제에 대해서 말해주는 상당히 전형적인 표제로 시작해서, 장엄한 승리의 찬양시와 승리의 노래, 그리고 신탁과 앗수르에 대한 조롱들, 마지막으로 짧은 장송곡으로 결론을 맺는다. 신학적인 메시지 나훔서 1:7-8절은 나훔서의 중심적인 메시지를 요약해 준다. 나훔서에서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용사이시다. 주전 7세기 독자들에게 나훔서는 희망의 메시지였으며 위로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으며, 곧 그 약속을 성취하셨다. 신약으로의 접근 나훔서와 현대 교회와의 관련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훔서의 영속적인 의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잇는 위대한 찬송인 1:2-8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다. 용사로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신약에서의 그리스도의 임재를 고대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역시 용사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용사됨은 사단 및 그의 마귀 및 인간 군대에 대해서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마지막 전쟁을 수행하시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그러므로 비록 니느웨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나훔서의 영속적인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전투에서도 역시 찾아 볼 수 있다."